언론자료







위클리조선 2008-07-11


[인터뷰] 日 화제의 책 ‘여성의 품격’ 쓴 반도 마리코 쇼와여대 총장;“진정한 요조숙녀가 돼라” 한국 여성들을 위한 충고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반도 마리코(坂東眞理子·62) 총장을 만난 건 주말이었던 지난 6월 21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였다. 한국여교수연합회(이하 ‘연합회’) 10주년 기념학회의 초청을 받아 내한한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날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짬을 내준 그는 일행과 함께 이른 아침식사를 하던 중 취재진을 맞았다. 인터뷰 룸으로 이동하려는데 그가 잠깐 멈칫하며 양해를 구했다. “잠시 화장을 고칠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역시 ‘여성의 품격’ 저자답다!


 


반도 총장이 쓴 ‘여성의 품격(원제 女性の品格)’은 2006년 9월 발매 이후 일본 내에서만 300만부 넘게 팔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29일 이 책에 대해 “최근 수십 년을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평했다. ‘여성의 품격’은 제목 그대로 ‘여성의 품격을 높여주는 66가지의 생활법칙’을 항목별로 정리한 책이다. ‘다른 사람이 상처 받을 만한 거친 말은 쓰지 마라’ ‘명품에 집착하지 마라’ ‘연예인 이름을 외우느니 꽃과 나무 이름을 외워라’ 등 귀에 쏙 들어오면서도 실천 가능한 이야기들로 일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과 일본 여성, 분발이 필요하다


관리직 진출 일본 10%, 한국 7%… 유럽 30%, 미국은 40%


제도보다 중요한 건 실력으로 인정 받겠다는 여성들 의지


 


반도 총장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그는 한국, 특히 한국 여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이번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도 ‘한국 여성에게 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여성의 품격’엔 한국 여성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일하는 여성’과 관련, 일본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상황을 그가 예의주시해왔기 때문이다. ‘여성의 품격’이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 제일 먼저 번역된 곳도 한국. 영어와 중국어 번역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에게 미리 준비해간 한국어판 ‘여성의 품격’을 보여주었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작은 사이즈 문고판으로 나온 원래 책보다 한국 번역본이 훨씬 예쁘게 나와 좋네요.”


 


그는 인터뷰 전날(20일) 있었던 연합회 10주년 기념학회에서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계 각국 여성의 사회진출에 관한 통계를 들어 한국과 일본 여성의 ‘분발’을 촉구했다.


 


“여성이 직장에 들어가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일본은 10%, 한국은 7% 수준입니다. 유럽은 이 비율이 30% 선이고 미국은 40%까지 올라갑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일하는 여성을 위한 지원책은 비교적 잘 갖춰진 편이에요. 남녀 고용기회 균등법이나 육아휴직제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하죠.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여성 스스로 직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인정 받겠다는 의욕을 갖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어제 강연에서도 여성이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능력을 인정 받아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강조했어요.”


 


책 ‘여성의 품격’의 인기 비결


비슷한 고민 겪은 선배의 도움말로 읽힌 듯


34번째 저서… 독자와 소통하는 기쁨에 비로소 눈떠


 


34년간 공무원 생활을 해온 그는 ‘여성의 품격’ 출간 이후 일약 대중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일본 매스컴은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고 책의 성공 비결을 분석하는 리뷰를 실었다. 책이 나온 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의 유명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까지도 주간아사히(2008년 6월 17일자)나 문예춘추(2008년 7월호) 같은 현지 유명 언론이 그를 대서특필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인기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일본 매체로부터 제일 많이 받는 질문도 그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의 최대 독자였다는 거예요. 그들은 어머니 세대와 전혀 다른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입장에 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선후배 관계나 업무 처리, 기타 생활 등 수시로 닥치는 문제에 당황하기 일쑤죠.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선배로서 그들에게 구체적인 어드바이스(advice)를 해주고 싶었어요.”


 


‘여성의 품격’은 반도 총장의 첫 번째 책이 아니다. 그는 오랜 관료생활을 거치며 일찍부터 논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책도 여러 권 썼다. ‘여성의 품격’은 그의 34번째 저서이고 그 이후 2년도 안 되는 사이 4권의 책을 더 집필했다. 그러나 ‘여성의 품격’ 이후 책 출간에 대한 그의 지론은 다소 바뀌었다. “예전엔 판매부수에 연연하지 말고 좋은 책을 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보니 독자와 소통하고 그들로부터 제 의견을 공감 받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제가 총장으로 있는 쇼와여대 재학생이 5000명인데 ‘여성의 품격’ 독자는 그 600배인 300만명이잖아요. 그만큼 제가 선배로서 후배 여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 셈이죠.”


 


그는 공직생활을 마치고 2004년 쇼와여대 교수로 취임,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여성의 품격’ 집필을 결심했다. “일본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관료사회에서 34년간 일하며 저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실패도 해봤어요. 가장 힘든 시기가 20대 후반이었죠. 입사한 지 몇 년 지났지만 별로 예쁘지도, 실력이 대단하지도 않아 어중간한 위치였거든요. ‘그때 누군가 내게 이런 충고를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일하는 여성이 사회에서 제 몫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저 역시 총리부에 들어온 지 10년째 되던 해 ‘부인백서’란 보고서를 작성해 높은 평가를 받기 전까진 늘 윗사람에게 혼나기만 하는 풋내기였어요. 그땐 ‘내가 공무원 체질이 아닌가’ 자책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젊은 여성에게 10년 후 인정 받을 때까지 힘들어도 참고 견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여성의 품격’이고요.”


 


일하는 여성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가 ‘육아’다. 그 역시 26세 때 첫 딸을, 이듬해 둘째 딸을 낳으며 힘든 시기를 겪었다. 육아와 관련, 선배로서 그가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출산과 육아는 가급적 엄마가 힘과 여유를 가졌을 때 하라”는 것이다. “첫째를 낳았을 때 전 계장 진급도 못한 평직원이었어요. 일은 바쁜데 연봉은 적고 사소한 일 하나 제 맘대로 결정할 수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려니 너무 힘이 들더군요. 둘째는 과장으로 진급한 후 낳았는데 일에도 여유가 생겼고 경제력도 한결 나아졌어요. 친정 도움도 있었고요. 그때 실감했죠. ‘엄마에게 여유가 있을 때 육아는 참 즐거운 일이구나’ 하고요.”


 


 


속옷 잘 입고 군살 빼면 ‘품격 있는 여성’?


“따분한 여자들을 대량 생산하자는 책” 혹평엔


“보수적인 일본서 현실적 대안 제시한 것” 반격


 


‘여성의 품격’에 대한 평가가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이너웨어를 잘 갖춰 입어라’ ‘군살을 용납하지 마라’ ‘단정한 머리모양은 멋쟁이의 기본이다’ 등의 내용은 일부 여성들에게조차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로마인 이야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따분한 남자에게나 어울리는 따분한 여자들을 대량생산하기에 완벽한 책”이라며 “젊은 여성들을 먼 과거의 전통적이고 비굴한 여성으로 바꾸려 한다”고 공개 비난하기도 했다.


 


반도 총장 역시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비판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 책을 다 읽지 않고 목차만 훑어봤어요. 제 프로필에 대해서도 단순히 ‘고급관료’라는 말로 요약해버렸죠. 전 고급관료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워킹맘’일 뿐이에요. 말단사원으로 입사, 34년간 꾸준히 노력해 국장이나 부지사가 된 거지 특별한 배경이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전 제 경험이 평범한 여성이 조직생활을 헤쳐가는 데 실질적 조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책을 쓴 겁니다. 세상엔 시오노씨처럼 문예적 재능을 타고나는 여성보다 조직 속에서 인내하며 꾸준히 일하는 여성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는 ‘여성의 품격’에 대한 뉴욕타임스 리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책에 대해 “일본의 남존여비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소극적 여성의 대응 요령을 언급함으로써 보수성을 강요했다”고 평한 바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여성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여전히 힘이 없고, 의견을 아무리 제시해도 주류의 논리에 튕겨져 나올 뿐이에요. 전 그런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고 현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자는 입장입니다.”


 


 


한국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


주어진 일 120% 해낸다는 자세로 실력 쌓아야


인내하면 기회 온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장기전


 


반도 총장에게 한국 여성 하면 생각나는 것은 ‘높은 교육열’이다. “일본도 유교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인데 한국은 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 여성과 한국 여성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결혼 후 아들을 낳아야 대접 받는 풍토부터 그렇죠. 일본의 경우, 여성이 아무리 역경을 딛고 열심히 일해 높은 직위에 올라가도 아들을 잘 교육시켜 유명한 사람으로 만든 어머니에 비해 덜 주목 받습니다. 신문 부고(訃告)란만 봐도 잘난 아들을 둔 여성이 스스로 유명해진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뤄지니까요.”


 


그는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세 가지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나를 바꿈으로써 주변을 바꾸자’는 것. “일본이나 한국이나 아직은 여성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실력을 쌓은 후 자신의 요구사항을 당당하게 말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매사 주어진 일의 120%를 해낸다는 자세로 임하세요.”


 


둘째는 ‘장기 전략을 짜라’는 것. “일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7세입니다. 한국도 그와 비슷하겠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이 30대가 되기 전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둡니다. 적성에 안 맞는다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섣불리 그만두지 마세요.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 믿고 인내하며 버텨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당당한 삶을 꾸릴 수 있습니다.”


 


셋째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자’는 것. “신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건강이에요. 사소한 일에 쉽게 상처 받고 고민에 휩싸이지 말고 매사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장기전이니까요.”


 


 


여자대학, 이래서 필요하다


사회 속 여성 역할 준비할 수 있도록 맞춤교육을


여성 교원 비율 높아 재학생에 역할 모델도 제공


 


지난해 쇼와여대 총장에 부임한 그는 여자대학의 위상에도 관심이 많다. “일본과 한국 모두 완벽한 남녀평등이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죠. 그래서 여자대학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저도 남녀공학인 도쿄대를 나왔지만 그때만 해도 여학생 비율이 3%에 불과했어요.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 보니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어서 늘 놀랍고 또 무서웠어요.


 


그런 점에서 여대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어 좋습니다. 또 종합대학에 비해 여자교원 비율이 높다 보니 재학생이 가까이서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쇼와여대의 경우 출산과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한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서포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여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죠.”


 


결국 그가 여성에게 강조하는 메시지는 “일이든 가정이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모두 버리는 여성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반대로 한두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가정으로 숨는 여성 역시 굉장히 아깝다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건 여성 스스로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그런 여성을 응원하는 사회이고요. 사회 전체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면 배우자 선택에 신중을 기하세요. 여성들이 자신을 잘 외조할 수 있는 남편을 선택하기 시작한다면 남성도 서서히 변할 겁니다.”


 


| 반도 마리코 |34년 공직 생활… 일본 첫 여성 총영사


 


1946년 일본 도야마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1969년 4월 총리부에 들어가 내각 홍보실 참사관, 남녀공동참가실장, 사이타마현 부지사 등을 거쳐 1998년 여성으로선 최초로 호주 브리즈번 일본 총영사에 임명됐다. 2001년 내각부 초대 남녀공동참여국장을 지냈고 2004년 쇼와여대 교수로 취임했다. 그동안 부학장을 거쳐 총장에 올랐으며 교수 취임 때부터 맡고 있던 교내 여성문화연구소장 일을 겸직하고 있다. 2003년 미 비즈니스위크지 선정 ‘스타 오브 아시아(Star of Asia)’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부지사 일기 : 나의 지방행정론’ ‘여유의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 브리즈번 총영사견문록’ ‘남녀공동 참여사회로’ ‘신가족시대’ 등이 있다. 2006년 발간한 ‘여성의 품격’<사진>은 300만부 넘게 팔리며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2007년 동명의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